경동교회 청년부에서 격월 발행하는 소식지입니다 =) 웹진 1330
2024년 4월호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고전 1: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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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여는 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 [Humans of 경청] (이기석)
- [Humans of 경청] (김주비, 배주영, 심서윤)
- <파묘> 관람 후기 (전찬경)
- [소모임 후기] 코이노니아 (전민기)
- 4월의 책 소개 (강민희)
- [영화 리뷰] 릴로와 스티치 (박현진)
- [에세이] 슬퍼하는 법을 잊은 우리들은 (임다영)
- [목회 서신] 사랑하고, 사랑하기 (강승구 목사)
- 경청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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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니는 우리는 본당에서, 장공채플에서, 그리고 수없이 많은 순간과 자리에서 십자가를 마주합니다. 별 주저함 없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라고 고백하며, 제자가 되려거든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나의 십자가는 어디 있을까? 기적도, 지혜도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전할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에서 드러나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이시며, 자비이십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는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서로에게, 이웃과 동료에게 사랑이라는 선물을 조금이나마 전합시다. 마르틴 루터가 말하듯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라면,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삶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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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안녕하세요 경청웹진 1330에서 기획한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개국을 너무 축하드립니다.
기석: 감사합니다.
민희: 개국을 언제 하신거에요?
기석: 3월 18일이요.
민희: 3월 18일이요? 그럼 진짜 얼마 안 됐네요.
기석: 네.
민희: 약사가 왜 되고 싶으셨어요?
기석: 약사요? 수능 보고 원하는 데를 잘 못갔어요. 그 당시에는 반수나 재수를 하고싶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잘 놀았어요. 그러다 1년이 훌쩍 지나가고 군대 갈 때가 되니까 뭔가 하나라도 해보고 싶었던 거에요. 이대로 흘러가면 밋밋한 인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옆에 친구가 약사가 될 수 있는 시험이 있대서 걔 따라서 그냥 학원 가서 그날 바로 등록했어요.
민희: 운명과 같은 만남이네요?
기석: 그 친구가 고맙죠. 그래서 1년 안에 됐어요.
민희: 어떻게 1년 만에 되셨어요?
기석: 그냥 1년 하려고 했어요. 모든걸 다 쏟아붓고 안 돼도 후회는 없겠다 해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잘 된거죠.
민희: 그래도 재능이 있었나봐요. 1년 만에 하는게 쉬운게 아닐 것 같은데요.
기석: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라서요. 그때는 진짜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지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밥도 그냥 20분 만에 먹고 와서 계속 공부하고, 1년동안 그냥 공부만 했어요. 약사가 되고 싶었다기보단 뭔가 인생에서 변환점을 가져보고 싶어서 약사가 됐던 것 같아요.
민희: 그러면 약사로 개국은 하셨지만 그 전에 그냥 다른 데서 약사로서 일하신 거잖아요. 그때 그럼 인상 깊었던 일이나 손님이 있을까요?
기석: 되게 많은데요. 제가 엄청 바쁜 약국에 갔어요. 대학병원 바로 앞에 1번 자리라고 하거든요. 약사가 10명이고 직원은 30명인 데서 했어요. 대학병원에서 오시는 분들이 다들 지쳐있어요. 병원에서 힘들게 몇 시간씩 기다리다가 마지막으로 약 받으러 오는게 약국이니까 다 날이 서 있어요. 그래서 인상깊었던 사람은 많아요. 제일 인상 깊었던 사람은 어떤 할아버지였는데 소변을 못참으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전립선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노화되는 기관이라 처방받아서 전문약을 드시면 돼요.” 그렇게 안내를 드렸죠. 사실 이게 진정한 약사잖아요. 돈 벌려면 그냥 약 드리면 되는데, 저는 아버님을 위해서 그렇게 안내를 한건데 그냥 달라셔서 드렸어요. 그러면서 이걸로 안 되실 거예요, 하고 할아버지를 보냈어요. 그리고 다음날 와서는 “네가 준 약 때문에 자기가 소변이 더 나온다. 속옷이 다 젖었다”고 보여주겠대요. 사람들 진짜 많았거든요. 근데 너무 화가 나셔서 이런 돌팔이 약사가 있냐고 하셨어요. 저는 진짜 억울한 게 처방약을 드셔야 한다고 계속 설득을 했거든요. 근데 기억을 못 하시더라구요. 화가 앞서 있으시니까. 그럴 때는 감정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신 거예요. 소리 지르고 무조건 환불해달라고, 근데 이미 드신 약이라 환불을 못 해드리잖아요. 그리고 제가 사장도 아닌데 어떻게 환불을 해요. 그렇게 약국에 난리가 나고 저도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조제실 들어가서 저도 ‘약사하기 싫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면서 혼자 화를 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제가 결정권자였으면 환불해드렸겠죠... 결국은 환불해드리고 진정시킨 다음에 보냈는데, 그래도 정말 화가 났었어요. 그러면 안 됐는데...
민희: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막무가내로 대노를 하시면 당연 기분 나쁘죠.
기석: 한달에 한번 꼴로 약사로서 잘 보살펴야 되는 분들인데 그걸 시험하게 하는 분이 있었어요. 근데 맨날 무너졌어요. 한참 멀었더라고요. 사실 조제실 직원들은 전후사정을 모르잖아요. 그럼 (저보고) 혼자 왜 욕을 하지 그러실 거고.. 그런게 기억에 남아요.
민희: 생각보다 힘든 직업이군요.
기석: 그러면서 저도 그럴 때 같이 화를 내버리면 후회가 되더라고요. 좀 지나면 감정이 가라앉잖아요. ‘아버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었을텐데... 소리를 질렀구나.’ 그런 걸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 가서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은 성장했던 것 같아요.
민희: 개국까지의 어떤 성장기인거죠. 그러면 소감이 어떠세요? 개국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그런 것들이요.
기석: 아 너무 힘들고 후회만 돼요. 제가 아직 서른인데 선배들이 “약사치곤 어린데 왜 이렇게 서두르냐”고 다 그랬거든요. 그래서 후회가 많이 돼요. 겉으로 봤을 때는 근무시간이 좀 느는 거고 돈은 훨씬 더 많이 가져가는데 어릴 때 빨리 경험해보고 나중에 편하게 살 수 있겠다 하고 시작을 했어요. 사실 막무가내로 냈거든요. 별로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근데 이제 와닿는 거죠. 아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근무약사로 있을 때는 도망갈 수 있잖아요. 날 지켜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근데 이제는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다 책임을 져야되는게 너무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더라고요. 또 빚도 많고 투자한 것도 너무 많으니까 이걸 회수할 수 있을까도 고민되고 손님은 또 안 오다 보니까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요. 좀 더 놀걸, 워라밸 지킬걸 그런 생각을 해요.
민희: 슬프네요. 저는 되게 기쁘게 인터뷰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요.
기석: 지금 행복한 게 없어요. 그래서 오늘 두려워하지 말라는 설교 말씀이 되게 좋았어요. 사실 두려운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 거잖아요. 제 경우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수 있을지 두려운거에요. 사실 권리금 들어간 걸 유지시키면 1년 후에 똑같이 팔 수 있거든요. 근데 내가 유지를 못할 수 있고 손님은 떠나고 내가 서투르니까 경험도 없고 그러니까 유지를 못할까봐 걱정인 거예요. 당장 2주 동안만 해도 제가 느리고 주문해놓은 약도 없고 그러니까 단골이신 분들 몇 분이 약을 안 받아가셨거든요. 그러면서 계속 심적인 부담감이 계속 생겼어요. 근데 오늘 말씀에서 그랬듯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두려워할 필요 없고 ‘하나님이 다 만들어놓은 나의 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오늘 그래서 많이 위로를 받고 가는 것 같아요.
민희: 다행이네요.
기석: 좋았어요.
민희: 그래도 기독교인 약사로서 다짐이나 포부나 있을까요?
기석: 아직 여유가 없나봐요. 제가 많이 못 사는 동네에 있거든요. 영업사원분들이 와서 이야기해주시는데 자기가 어느 동네를 가도 이런 가난한 곳이 없다고. 또 거기서 친구 어머니가 슈퍼를 30년을 하셨는데 얘기 들어보니까 여기가 모든 것을 다 잃고 들어오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거의 다 의료급여 환자예요. 돈 하나도 안 내는 분들 있잖아요. 거의 50% 이상이 그러더라고요. 저도 그런 동네는 처음 봤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 힘 쓰는 게 좋은 영향이잖아요. 근데 아직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손님 한 분 한 분 받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역량을 펼치고 좋은 약을 드려볼만한 여유까진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일단은 파는 데 급급해서 차차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익숙해져야 뭔가 좋아질텐데 아직은 나 자체가 여유가 없어서 대하는 게 좁아지더라고요. 환자가 아니라 아직은 그냥 일로 보여요. 일단 포부는 가져볼게요.
민희: 혹시 아까 (소모임때) 기도제목 얘기했는데 기도제목 있을까요?
기석: 그냥 약국 잘 됐으면 좋겠다는 거요.
민희: 그쵸 그게 제일 중요하죠.
기석: 아 그리고 여유가 생겨서 빨리 하나님의 자녀답게 약국을 운영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민희: 기도하겠습니다.
기석: 감사합니다.
민희: 오늘이 부활주일인데 소감이 어떨까요?
기석: 이번 주 말씀을 통해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너무 두려운 시기인데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걸 저한테 말씀해주신 것 같아서요.
민희: 다행입니다. 이제는 조금 가벼운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요새 결석이 잦아지는 이유가 있을까요?
기석: 아, 진짜 저번주는 너무 바빴어요. 주일은 원래 약국 안 여는데 가서 일해야 할 것이 많아서 안 갔고요. 근데 저는 본당예배가 너무 익숙해요. 그래서 그냥 엄마 다니시니까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본당예배에 갔다가 오후는 좀 쉬고 싶어서요.
민희: 아예 교회에 안 오시는 게 아니라 본당예배에 가시는군요. 이번엔 밸런스게임이에요. 약국과 교회를 지켜야 한다면? 그 이유는?
기석: 이거 답정너 아니에요? 교회를 지켜야죠 그쵸.
민희: 이제 인터뷰에 실릴 수 있겠네요. 약국이라고 하셨으면 이제 빼야 하는데...
기석: 교회를 선택을 안하고 약국을 선택하면 너무 물질적이잖아요. 그래도 크리스천인데요. 둘 중 하나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면 약국을 버리고 교회를 택해야 할 것 같아요.
민희: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름으로 삼행시 해주실 수 있나요?
기석: 저 진짜 못해요. 그래도 해볼게요.
민희: 이
기석: 이기석
민희: 기
기석: 기를 펼치자
민희: 석
기석: 석세스!
민희: (박수) 삼행시 결국 성공하셨네요, 주님 안에서 성공하는 약국 되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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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경청
김주비, 배주영, 심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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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 그동안 교회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서윤: 크리스마스마다 본당 안팎으로 걸리는 장식과 조명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아, 2020년쯤에 교회 앞에 교회학교에서 타임캡슐을 묻은 적이 있어요. 어떤 걸 넣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나에게 쓰는 편지에 내 이름과 부모님 성함을 썼던 것 같아요. 나중에 치매 걸릴까 봐요.
세한: 공강이나 쉬는 날에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주비: 아무래도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보니 친구들을 자주 만나요. 혼자 있을 때는 밀리의 서재에서 일본 로맨스 소설을 자주 읽어요. 표지랑 제목이 흥미로운 게 많은데, 제가 읽는 걸 친구들이 보면 왜 로맨스 소설 주인공들은 맨날 불치병에 걸리냐고 웃더라고요. 한 책에서는 볼 수 있는 색깔이 하나씩 사라져서 결국 회색만 남고 1년 뒤에 죽게 되는 특이한 이야기도 봤어요.
세한: 성인이 되면서 그 전과 달라진 점이 뭐가 있나요?
주영: 재수를 하고 있다 보니 아직 답답하긴 하지만, 학생 때보다는 더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뭐든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도 했고요. 고3 때는 모두가 예민했었고 서로 말도 함부로 하기도 했고요. 수시 넣을 때 친한 교회 친구한테 무슨 과 지원할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내가 그걸 왜 너한테 말해야 되는데?’ 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은 적이 있어요. 다행히 친구가 먼저 사과를 해주긴 했죠. 그 이후로는 다른 친구들한테 궁금한 게 있어도 조심히 물어보려고 했죠.
세한: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느낀 소감이 있나요?
서윤: 교회 사람들끼리 밖에서 자주 만나서 친교하고 어울리는 게 되게 신기했어요. 또 예전에는 수련회가 있어도 학원 시간이랑 겹치면 못 갔는데, 지금은 가서 자고 올 수도 있으니까 좋죠.
주영: 오키나와 기행을 못 가서 아쉬워요. 이제 막 들어와서 아는 분들도 많이 없고, 이름도 아직 잘 모르고요. 반대로 생각하면 새롭게 알아갈 기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작년까지는 중고등부에서는 분위기를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었는데, 청년부에서는 막내라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주비: 저는 기행도 다녀왔고, 지금은 찬양팀도 하면서 다양한 분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아요. 나이대가 다양하다 보니 직장생활 이야기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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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경동 청년부(이하 경청)는 매달 첫째 주 주일에는 청년부 예배를 드리지 않고, 본당 예배를 드린 후 청년들끼리 함께 문화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첫째 주 주일을 지키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성만찬 참여, 교회학교 교사 청년들과의 친교 시간 확보 등이 큰 이유이겠네요.
지난 3월에도 역시 경청 문화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경청의 3월 문화활동은 영화 “파묘” 관람이었는데요. 교회 청년부 공동체에서 함께 귀신, 무속 신앙들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인 파묘를 관람한 것이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파묘가 당시 갓 개봉한 가장 핫한 영화이기도 했고, 저희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본받아 파묘를 채택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영화 “파묘”에 대해서 짧게 소개하자면, 한국의 무속신앙인 풍수지리와 과거의 토테미즘적인 요소들을 소재로 하는 오컬트, 공포 영화입니다. 다수의 명배우들과 오컬트 장르의 대가인 장재헌 감독이 만나,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얻어 1000만 관객을 달성하기도 하였는데요. 아직 파묘를 보지 못하셨다면 시간이 나실 때 시청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 공포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으나 “파묘”는 관람하면서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또 영화를 보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풍수지리’라는 소재였습니다. 저는 풍수지리에 대해 아는 거라곤 “배산임수” 밖에 없는데, 풍수지리에 대해 문외한인 제가 보아도 영화 속 풍수사와 장의사에 대사들은 꽤 흥미롭고 여러 생각들을 들게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 풍수지리에 대한 저의 견해가 변하게 되었는데, 영화 초반에는 ‘사람이 사는 곳도 아니고 죽은 사람의 묘가 어디에 있든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풍수지리를 마치 사이비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 그리고 파묘를 다 본 지금은 명당이라는 것이 특정 기준에 따라 정말 존재할 수도 있고 그 명당에 소중한 사람을 기린다면 더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나님이 아닌, 또 다른 신앙으로 볼 수 있는 풍수지리를 믿지는 않지만, 영화속의 등장인물들과 세상에 풍수지리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조상 또는 부모와 같이 소중한 사람의 묘를 좋은 땅, 즉 명당에 두어 일이 잘 풀릴 것이라 믿고 자신의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도 더욱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시각이 넓어지고 풍수지리에 대한 지식과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된 점에서 “파묘”는 단순히 재미나 공포스러운 부분을 넘어서 꽤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라는 평을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화활동 당시의 청년들의 분위기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문화활동에 참여한 청년들의 인원은 대략 15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요. 청년들 모두 영화를 볼 생각에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려니 설레는 마음을 갖고 문화활동에 참여했습니다. 2부 예배를 드린 후 친교실에서 식사를 하고 마당에 모여 함께 교회 근처의 영화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영화는 맨 뒷 열에서 청년들이 함께 일자로 앉아 관람하였고 제 기억으로는 종국이 형이 사비로 여러 청년들에게 팝콘과 음료를 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다 본 후에 특별히 애프터를 갖지는 않아서, 청년들끼리의 친교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부분이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파묘를 보고 온 후 몇주간 청년들이 파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으로 보아, 함께 파묘라는 영화를 본 후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생겨 분명 청년들의 친교에도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3월 문화활동을 토대로 앞으로 또 문화활동으로 영화를 관람하러 가게 된다면 영화만 보기보다 영화를 본 후에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러운 친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애프터까지 진행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들이 문화활동에 참여하여 즐겁게 친교할 수 있길 바라며 그 과정에서 믿음의 동역자로 거듭나는 경청이 되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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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모임은 설교 말씀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성경공부이다. 소규모 형태로 자유롭게 진행되는 만큼 교우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나는 작년 12월부터 청년부 예배를 드리며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교회에 소홀했던 나를 반성하며 어떻게 하면 믿음을 키울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성경을 열심히 읽기만 한다고, 기도를 더 열심히 드린다고 근본적인 의문이 풀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며 점차 물음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교회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줌으로써 교인 간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양육한다. 그동안 난 교회 공동체 내의 소통의 힘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약 성서에 ‘코이노니아’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이는 헬라어로 친교, 공유, 남과 함께 나누다, 공통, 다같이 등 여러 가지 뜻을 지니는데 크게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와 인간(성도) 간의 교제로 나누어진다. 나는 후자를 간과하고 개인적인 노력으로만 하나님께 다가가려고 했던 것 같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두시고 함께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셨다. 이는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닐까.
나는 소그룹 모임을 단지 성경공부로 치부하지 않는다. 소그룹 모임은 성경공부라는 어감이 주는 문자적-사실적인 형태의 공부(학습)가 아니라 교우들 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예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 공동체, 경동교회 사람들이 교제하며 서로 사랑하고 성장해 예수님을 닮아갔으면 좋겠다.
쓰고 보니 소그룹 모임을 너무 무겁게만 표현한 것 같다. 내향적인 성격의 나도 잘 적응했으니 이 글을 보는 새교우 분들이나,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길 주저하는 분들도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소그룹 모임 이후에 맛있는 식사를 하는 등의 또 다른 소그룹 모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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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천선란)
무거운 사람 대신 기수 휴머노이드를 사용해 더 빠르고 스릴 넘치는 경마 경기를 볼 수 있는 시대, 버려진 학습용 휴머노이드 ‘콜리’는 기수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달릴 때 가장 행복하지만 무리한 경기로 연골이 다 닳아버린 경주마 ‘투데이’를 만나게 된다. 다른 휴머노이드와는 달리 행복이라는 감정을 궁금해하는 콜리는 자신은 느낄 수 없지만 투데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한다. 생의 마지막 질주를 앞두고 있는 투데이를 위해 콜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보통의 SF소설은 발전된 기술과 그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소설은 발전된 기술 속에서 소외되는 존재들을 그린다. 사회의 기준에서 가치를 잃은 존재들이 얼마나 파랑파랑하게 빛나는지 이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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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브래디 미카코)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사는 일본인 저자는 아일랜드인 남편과 중학생 아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계 명문 학교에 다니며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해오던 아들이 돌연 마을의 노동자 계급의 백인 아이들이 다수인 공립 중학교에 입학하겠다고 선언하며 저자의 고민이 깊어진다. 그곳은 인종차별과 빈부갈등이 뚜렷한 사회의 축소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은 저자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만의,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다양성과 차별이라는 복잡한 층위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오히려 어른보다 성숙한 모습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아이들의 순수함이 얼마나 강한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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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다입니다』 (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부른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통역사로서 부모님과 자신의 세계를 잇는 일을 하는 코다는 자라면서 농인을 그저 ‘장애인’, ‘어딘가 부족한 사람’ 등으로 보는 비장애인 세상의 편견과 마주친다. 이 책은 두 세계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던 이들이 스스로를 ‘코다’로 정의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여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이 책을 통해, 코다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접하지 못한 세계가 많았는지 깨달았으며 ‘다수’의 세상에서 편안히 살아가는 나의 좁디 좁은 시야를 조금이나마 확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차별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서도 무엇이 차별이 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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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로와 스티치’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6살 릴로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릴로를 돌봐야하는 18살 언니 나니와 둘이서 함께 산다. 나니는 부모님 대신 릴로에게 엄마 노릇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릴로는 언니가 엄마역이 아닌 언니이길 바란다. 나니는 사회 복지사 미스터 버블스의 압박을 받으며 일하기 바빴고 릴로는 친구들이 자신을 피하자 외로움을 타고 있던 중 나니는 릴로를 위해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외계 행성에서 줌바 박사의 파괴 목적으로 만들어진 위험한 외계 생명체 626은 지구로 탈출한다. 지구에 도착했을 때 트럭에 치어 의식을 잃고 보호소에 보내진 626을 동물 보호소에서 보게 된 릴로는 626을 입양하면서 스티치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외계 행성에서는 스티치의 창조자인 줌바 박사와 지구 전문가 플리클리가 탈출한 스티치를 잡아오라는 임무를 받게 된다.
스티치가 줌바 박사의 방해로 나니가 일하는 식당에 소란을 피우자 나니는 해고를 당하고 셋은 집에 돌아온다. 이 때 스티치를 돌려 보내길 원하는 나니와 스티치는 꼬마 천사라고 안된다고 우기는 릴로의 갈등이 생긴다. 다툼 중 릴로가 “오하나”라고 외치자 나니의 눈빛이 달라진다. “아빠가 ‘오하나’는 가족이란 뜻이랬어. 가족의 뜻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 거 또는 잊지 않는 거”라고 언니를 설득한다.
다음 날 나니가 직장에서 쫓겨난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미스터 버블스는 나니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릴로는 위탁 가정에 보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스티치를 모범 개로 만들라고 숙제를 준다. 나니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던 중 나니의 친구 데이비드가 휴식으로 서핑을 권한다. 스티치는 수영을 하지 못하고 물을 싫어하지만 릴로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같이 서핑을 하게 된다. 그러다 줌바 박사가 스티치를 잡던 중 릴로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모든 것을 지켜보던 버블스 사회 복지사는 나니에게 내일 릴로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 외계 행성의 대법원장은 줌바 박사와 플리클리가 스티치를 잡아오지 못해 새로운 요원 간투를 파견한다. 닥터 줌바와 스티치가 싸우며 집이 망가지고 만다. 나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불에 타고 있었고 사회 복지사는 릴로를 차에 태워 데려가려고 한다. 릴로가 도망갔으나 릴로는 간투에 의해 잡히게 된다. 스티치는 나니와 함께 줌바 박사와 플리클리와 한 팀이 되어 릴로를 구해낸다.
하지만 외계 행성의 대법원장이 지구에 나타나 스티치를 데려가려고 한다. 스티치는 릴로와 나니를 자기의 가족이라고 소개한다. 식구가 적고 문제점도 있지만 자기 힘으로 찾은 가족이므로 그래도 좋다고 얘기한다. 릴로는 스티치를 입양한 날 입양 증명서를 보여주며 소유권을 주장하자 대법원장은 스티치를 지구에 유배해두기로 동의한다. 릴로와 스티치, 나니 그리고 줌바 박사와 플리클리, 미스터 버블스와 데이비드, 모두가 힘을 합쳐 릴로의 집을 새로 짓는 행복한 결말이 난다.
분명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봤던 기억이 있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전혀 내용이 기억에 나지 않았고 새로웠다. 아주 따뜻하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영화였다. 파괴만을 위해 만들어진 생명체 626, 스티치는 릴로를 만나 파괴보다 사랑과 희생을 배워 가족의 따뜻함과 우정의 소중함을 얻게 된다. 귀여운 그림체의 스티치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귀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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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슬퍼하는 법을 잊은 우리들은
글ㅣ임다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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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10월 말일을 잊을 수 없다. 보건을 위하여 잠시 자리를 내어주었던 많은 것들이 제자리에 돌아왔던 그 계절을 기뻐하며, 자교의 승리를 축복하며, 자리에 함께 하는 많은 이들에 신나하며, 안암의 골목길에서 밤을 보내고 있던 그 시간에 6호선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밤의 끝을 채 보지 못한 채 마지막 숨을 답답히도 쉬었다. 시월 말일은 월요일이었다. 학교에서는 떠난 이들을 기리는 곳으로 작고 허름한 천막을 학교 한 구석에 설치해두었으나 그 곳에 발걸음을 들일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으나, 슬퍼하고(哀), 또 슬퍼하기(悼) 전에 일은 빠르게 정쟁의 소재가 되었다. 그 일의 슬픔을 논하는 건 정치적 성향을 고백하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모두가 슬퍼했으나 누구도 드러내놓고 슬퍼하지 못하는 서슬 퍼렇고 섬뜩했던 시월의 마지막 월요일 그 교정을 잊을 수 없다.
10년 전 4월 어느 수요일도 잊을 수 없다. 등교하고 잠이 이제 완전히 깬 상태였던 기억이 나니 2교시 즈음이었으려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께서는 참담한 표정으로 교실 앞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트셨고, 그 배가 침몰하기 전에 휴대폰을 제출했던 30여 명의 학생들은 삽시간에 굳은 표정이 되었다. 선생님과 학생들, 전도사님들과 목사님은 그 날 온종일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하교 후 집에 와서 부모님께서는 나와 동생을 품에 안고 서글프게 우셨고, 이 기억을 서울 반대편에 살던 내 친구도 나와 공유한 걸 보면 그때에는 분명 온 나라가 함께 울었나보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은 앞으로 갈까. 인류는 몇 년 사이에 진화하여 슬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까. 아니면 슬픔을 숨기는 데에 더 능해진 걸까. 우리는 어째서 몇 년 사이에도 슬퍼하지 않거나 그리 보이도록 변해야 했을까.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어떤 시대의 인간보다 우울하다. 아동, 청소년, 청년, 중년, 노인을 막론하고 각자만의 사연으로 우울한 우리들은 어째서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슬프지 않다고 느끼며 살아갈까. 슬픔을 표출할 수 있던 학교라는 공간은 어떤 사연으로 모두가 슬픔을 드러내는 것 그 자체를 시퍼렇게 경계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을까.
슬픔을 표현할 수 없다고 믿다가, 못내 슬프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그 자체로도 슬프다. 슬픔의 대척점에는 기쁨이 아니라 무감각이 있다. 대한민국의 무감각함은 50년 전 먹고 사는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슬픔을 죽이려고 태어났다가, 40년 전 표현 그 자체가 죄악시되던 시대의 그림자를 먹고 자랐을 것이며, 30년, 20년, 10년, 그 간의 시간을 먹고 자라나다가 그 몸집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슬픔에 무감각한 세상은 슬퍼하고서는 버틸 수 없던 세상의 방증으로서 탄생했으나, 종국에는 물리치지 못할 크기로 커져 이제는 주목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었다. 오늘의 세상은 슬프도록 무감각하다.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고는 삶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슬픔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과연 기쁨에 대하여 알 수 있을까, 안다면 무엇을 알까. 슬픔을 슬픔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는 우리들은 불안 없는 기쁨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기쁘지 않고, 기쁜 순간들이 모여 오는 행복을 모르고서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슬퍼하는 법을 잊은 우리들은 어디에서 행복의 의미를 배울까.
인간이 행복을 향하는 지향성 그 자체를 본성 삼은, 행복할 권리를 타고난 존재라면, 우리 본성에는 필연적으로 슬픔을 지각하는 촉수 같은 게 있어야 하고, 우리는 슬퍼할 권리도 타고났을 것이다. 인간의 형상으로 오셨던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요한복음 11장 35절)는 걸 보면 인간 된 우리가 슬픔을 느끼지 않고, 울지 않게 된 것은 결코 진화일 수 없다. 짊어지고 태어난 행복과 슬픔을 향유할 수 있는 우리들은 마음껏 울 수 있고, 울어야 하며, 우리가 우는 것은 단지 우리의 행복뿐 아니라 울어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리라. 한 사람의 미약한 힘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테니, 내가 운다고 하여 마음껏 슬퍼할 세상이 만들어지진 않으리라. 그러나 나와 세상의 행복을 위하여 울어야만 한다면, 울 수 있는 공간을, 공동체를 찾으리라.
교회는 그 탄생부터 세상에서 소외받고 상처 받은 이들을 감싸는 곳이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는 마음을 보호하고, 다시 세상에 나아가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그 뜻을 이룩하며 살아갈 힘을 주어야 할 교회만큼은 누구나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이 곳에서만큼은 우리 속에서 소외한 슬픔 역시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길. 이 곳에서만큼은 안전하게 울 수 있고, 그 마음 역시 존중받길. 서로의 행복을 기뻐할 수 있을만큼 세상의 슬픔을 바라볼 수 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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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서신
사랑하고, 사랑하기
글ㅣ강승구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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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여섯 번, 교회를 오갈 때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한다. 가끔씩 만원 지하철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거나, 사람들의 무게를 못 이겨 밀려 욱 할 때가 있지만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지하철을 선호한다. 보통은 찬양을 듣거나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 아이디어를 정리하며 – 믿거나, 말거나 - 30여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이게 뭐야? 언제 지하철 노선도가 이렇게 복잡해졌지?’ 깜짝 놀랐다. 회현동에서 방학동으로 이사하고 처음 타본 4호선, 금호동에 살던 시절, 긴 호흡으로 신금호역 공사의 과정을 지켜보고서 탔던 5호선. 기억의 회로가 거기까지였던가? 그동안 수도 없이 타고 다닌 지하철이지만, 노선도를 보니 ‘세상이 언제 이렇게 변했지?’, ‘참 빠르게 변해가는구나’ 싶었다. 개그 프로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던 역 이름 외우기가 이제는 쉽지 않을 만큼 넓게 그리고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어린 시절 추억들 때문인지 낯설게 느껴졌다.
며칠 전 교회 집사님께서 “여기 건물 사진들을 찍어둔 파일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라고 하셨다. “왜, 건물 사진은 찍으세요?”라고 묻자 “세상이 너무 빨리, 자주 바뀌잖아요.” 라고 답하셨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강과 산도 실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십년이 지나고 보면 눈에 띄게 변해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은 여러모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무분별한 개발로 산을 파헤치고 강을 메꾸니 이제는 변할 강산을 찾아보기도 힘든 세상이다. 집 근처 무악재를 넘어설 때 보이던 남산은 아파트 숲으로 가로 막힌 지 오래고, 단골이라는 문화가 사라질 만큼 간판은 자주 바뀐다.
돌이켜보면 세상은 계속 변한다. 음악의 빠르기말처럼 때로는 ‘Largo’로 때로는 ‘Allegro’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주일학교에서 귀에 박히게 들은 말씀, 그리고 지금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하는 말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말씀이다. 이 말씀은, 모르긴 몰라도 믿음의 선배들이 일 년에 몇 번씩이고 들었었을 것이며, 우리들 역시 누군가에게 우리의 믿음생활의 핵심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일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니 그렇겠지만 조금 이상하다. ‘언제까지 사랑타령만 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 말씀이 되풀이되어야 할까?’ 두 가지 마음이 든다. 하나는, 혹시 우리가 오늘 다하지 못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때문에, 이 이야기가 되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동시에 우리가 다 하지 못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둘째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말씀인 이유를, 우리가 서로 사랑함에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 베푸신 사랑에 닿을 수 없다는 데서 찾아본다.
급변하는 세상, 예측할 수 없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분투하는 청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려가지만, 그 결승점이 신기루처럼 바뀔 때가 있다. 좌절과 절망, 무너지는 마음들을 어떻게 위로해야할까? 이 직장이 내 마지막 회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로 입사와 동시에 이직을 생각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바람이 되기도 한다. 교회력으로 부활 절기를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사랑의 말씀 앞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든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되길 바란다. 각자 주어진 삶 속에서 어떤 사랑을 나누다 왔는지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여러분의 변함없는 예배의 자리가 되길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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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소식과 기도제목
효정: 최근 이래저래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잘 찾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다현: 경동교회 친교실과 사이니지를 건축가, 큐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Dream Team을 구성했으니 공사완료까지 각자 최고의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도록 이 프로젝트에 은혜를 부어주십시오. 6월 코펜하겐 일정에서 새로운 영감과 만남의 축복을 주세요. 고덕 아이파크 프로젝트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협력업체들이 잘 굴러가고 일정에 맞춰서 최고의 결과물을 보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상현: 제 대구 집 앞 샐러드 집이 맛있어요. 대구 놀러오시면 사드릴게요
세한: 분주한 마음이 다시 평안해지기를, 지속 가능한 노력을 기울이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5월에 설악산, 광주 기대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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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 답사
경청 여름 수련회 준비를 위한 답사를 3/26(화) 충주 야촌교회와 완주 율곡교회로 다녀왔습니다! 가서 살펴보고 논의한 결과 여름 수련회는 8/8(목)-8/11(일) 율곡교회로 정해졌어요. 수련회에 많은 교우들이 참여하기를, 신앙이 한층 더 성숙해지고 우리 관계도 더 끈끈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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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째 주일은 본당에서 성찬 나눔이 있어서 청년부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문화활동을 진행합니다. 3월에는 다같이 영화 <파묘>를 관람했고, 4월에는 조를 나누어서 자유로운 시간을 각자 즐겁게 보냈어요. 20대 초반 조는 한강, 20대 중후반조는 창덕궁, 30대 조는 덕수궁을 다녀왔고 사진도 많이 찍었답니다. 앞으로도 소풍이나 나들이부터 강연까지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경청을 찾고 싶은데 고민 중이었던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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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고, 우리 교단에서도 가까운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장애인주일인 4/21(일) 본당예배에서는 예배 실황이 수어로 통역되기도 했어요. 청년부에서는 시각장애인 당사자이신 성호교회 안영식 장로님과, 배우자 되시는 이효순 권사님을 모시고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귀한 기회가 있었는데요, 두 분이 만나시게 된 계기부터 일상 속에서 겪으시는 차별과 불편, 교우들에게 라시는 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예배 중에는 차별 없는 세상을 기원하는 공동기도를 함께 드리기도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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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강민희 류상현 오세한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청년부 "웹진 1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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